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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피사체는 사람이다. 꽃도, 깨어진 병도, 음산스러운 외로움과 쓸쓸함도 내가 좋아하는 피사체인 사람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 제한이 너무 크다. 사진찍히기 싫어하는 한국사람들을 머리통 자르며 찍기도 이제 지겹다. 그래서 자꾸만 필리핀을 가고 싶다. 나를 반겨주는 이들이 있는 필리핀으로 가고 싶다. 내 카메라 앞에서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고 사진찍는 나를 위해 태연하게 하던 일을 계속해주는 그들이 좋다. 촌놈 태어나서 서른 여덟이 되는 해에야 여권에 처음으로 도장을 찍어봤다. 전자출입국 패스를 등록해 놓았지만 일부러라도 도장을 찍으며 출국장을 나간다. 입국때에는 피곤한 여정과 몸둥아리로 인해서 빠른 줄을 찾아 눈치보며 전자입국심사대를 들어오지만. 현지인들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 야심한 시간에 퍼블릭마켓에 가서는 탄두와이를 마셔가며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좋다. 되지도 않는 영어를 써가며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좋다. 도대체 이 누렁이 외국인이 이 곳에 왜 왔는가를 신기해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나를 향해 웃어줄 때면 너무 행복하다. 한국사람들은 하지 말라는 것을 할 때에 그들은 나를 반긴다. 때로는 척박한 그들의 삶은 내 눈에서 내 카메라 안에서는 예술이 된다. 그리고 또 그들과 이야기한다. 필리핀에 먼저 나가 있는 여자친구에게 왜 Jay는 들어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을 만큼 그들은 이미 내게 친구가 되었다. 태어나 처음 나가본 외국여행의 첫 날에 일당 만원 수준의 그들이 주머니를 털어 내게 술을 대접했다. 낮에 한 병, 저녁에 한 병. 그렇게 나는 처음 간 외국여행길에서 내가 신세를 져야할 레져사업을 하는 사무실의 사장실에 오줌발을 갈길 만큼 꽐라가 되었지만 그들은 아무말 없이 내 배설물을 치워줬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나를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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