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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오늘 새벽 잠들기 전에 마음속에 담아 둔 그녀로부터 사랑고백을 받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도 하기 전에 마시는 커피가 유난히 맛이 있습니다. 담배 한 개비와 함께 맞이하는 오늘의 응가는 향기롭기까지 합니다. 대책없이 기르기만 했던 수염도 말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오늘은 산뜻한 흰바지와 파란 운동화를 신고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의 햇살은 어제의 쓸쓸했던 햇살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숱도 없는 머리를 헝클어 놓는 봄바람 덕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됩니다. 쇼윈도우에 비친 내 얼굴에 트레이드마크였던 눈웃음이 다시 생겼습니다. 뿌연 황사먼지는 세피아톤의 영화스크린처럼 펼쳐집니다. 앙상한 가지 끝에 홀로 지저귀는 새는 프리마돈나가 됩니다. 암수 서로 정답게 염장질 하던 새들도 오늘은 마냥 사랑스럽습니다. 사람들마다 비벼 대는 스마트폰보다 어제의 고백을 전한 내 베컴폰이 유난히 멋집니다. 시간 약속을 어긴 "부부"세탁소의 주인들도 정겹습니다. 차를 가로 막은 아이들의 함박웃음이 사랑스럽습니다. 오렌지 빛으로 켜진 주유경고등도 아름답고 마음만은 빵빵합니다. 내 앞에서 걸린 빨간 신호등의 불빛도 아름다운 빛망울입니다 내 앞에 끼어 든 차는 무슨 급한 일이 있나 봅니다. 저런저런. 내 주차구획에 세워 둔 차도 급한 용무가 있나 싶어 그냥 길가에 세웠습니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만년필의 잉크 카트리지도 새로 갈아 끼웠습니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가죽수첩의 속지도 새로 갈아 끼웠습니다. 수리 맡겼던 카메라 렌즈도 다시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피우던 담배 말고 폼나는 말보로 미디엄으로 바꾸었습니다. 오랜만에 공원에 앉아서 떠오르는 시상도 적어봤습니다. 앞으로 더 멋진 사진과 글을 쓰겠다는 각오도 했습니다. 오늘 새벽 1시부터 알릴 수 있는 곳마다 글을 올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생기면 염장질로 다 죽여 버리겠다고 했던 비통한 각오도 생각이 났습니다. 운전하는 내내 차를 돌려 그녀에게로 달려가고픈 마음을 눌러 참았습니다. 아는 사람마다 손을 꼭 붙들고 "저 사랑하는 사람 생겼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내 외로움에 치를 떨며 사랑하는 사람 생기길 바라던 친구들로부터 축하도 받았습니다. 만우절에 치는 뻥 하나로 오늘 하루가 달라졌습니다. 진짜 현실이라도 된 양,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오묘함이 진짜 현실이라도 된 양,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는 설레임이 예전에 내 사랑의 시작이 그러했듯이 신비롭습니다.

"사랑"은 그런 건가 봅니다. 그런데 어쩌죠? 다들 실망할까 봐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글/사진 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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