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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을 펼쳤다. 해독불가의 상형문자들이 쓰여 있다. 어제 새벽에 후배가 찾아와 나누던 한 잔 술들 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 있어 적어 놓은 모양이다. 글자 수를 헤아려보니 삼삼조의 두 단어가 네 줄 길지 않은 메모에 뭔가 운율을 맞춰 써놓은 시 같기도 하고, 거친 단어가 살짝 읽히는 격언 같기도 하다. 간혹 휴대폰 통화내역 속에 있는 기억나지 않는 통화내역들이야 의례 그렇다 치지만 그 좋은 술 마시며 시간 들여 적어 놓은 이 글귀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 중간 중간 보이는 또박거리는 글자에서 최대한 정신 차려 쓴 것이 분명한 너의 정체가 무엇이냔 말이다. 뭔가 드는 생각이 있어 애써 써놓은 너의 정체와 뭔가 드는 생각을 애써 쓰고 있었을 나의 정체는 또 무엇이냔 말이다. 소속이 어디냐? 이름을 대라! 메모지가 말했다. "알면 다친다!" 알면 다칠까봐 쓰레기통에 고이 모셨다. 글/사진 김재중 http://ZZIX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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