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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날아든다. 아니, 파리가 날아든다. 온갖 잡파리가 날아든다. 이 산으로 가면, 아니, 이 모니터로 가면 휙휙 휙휙 저 모니터로 가면 휘익 휘익 에헤~ 손으로 휘저어 쫓아보지만 내 산발머리 위로 올라앉는다. 에헤~ 내 따귀도 때려보지만 여지없이 내 콧잔등에 올라탄다. 노려본다. 노려본다. 또 노려본다. 잡았다. 날렵한 동작으로 가로채 공중부양을 하는 동시에 손으로 낚아채 잡았다. 밀폐된 손바닥 안에서 미세한 움직임을 기대한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파리의 존재여부를 촉각만을 이용해 느낀다. 보이지 않는 그것을 잡았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고민한다. 움켜쥐어 터트릴 것인가? 땅바닥에 후려쳐 뇌진탕으로 보낼 것인가? 양자 모두 희생이 따른다. 움켜쥐어 터트리자니 내 손에 파리내장을 처발라야 할 것이고, 후려쳐 뇌진탕으로 보내자니 자리에서 일어나 비중 없는 물체에 운동에너지를 일으킬 만큼의 회전력을 가진 투구동작을 해야 한다. 귀차니즘은 그냥 파리내장을 보기로 결정했다. 빈 공간을 만든 손을 점차로 움켜쥔다. 좁혀드는 공간 속에서 한 치의 빈 공간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왼손으로 오른주먹을 감아쥐고 힘껏 누른다. 공허하다. 공허하다. 확인사살이 필요하다. 비록 터진 파리내장을 육안으로 확인해야 하는 고역을 치러야 하지만 비록 파리똥구멍으로 삐져나온 내장이 내 손에 붙은 채로 그렇게 덜렁거리며 붙어 있을 파리이지만 결국 확인과 처치가 필요하다. 혹시라도 살아 날아갈지 모를 확인을 위해 두 눈에 힘을 잔뜩 주고 그 움겨쥔 주먹의 관절들이 마비되어진 느낌의 손을 펴기 시작한다. 손가락마디마다 다시 피가 흐르며 전율감 같은 긴장의 완화를 느낀다. 나, 없다.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어떤 허상을 움켜쥐고 그 것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처리하기 위해 그 고민과 희생을 불사했던 것인가? 그리고 파리는 보란 듯이 나를 놀려댄다. 같은 고민과 행위를 반복한다. 끝내 그 허상 같던 파리새끼를 굴복시켜 죽여버렸다. 글/사진 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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