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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죽을 놈


썩어죽을 놈.. 어머님의 칠순잔치를 대신하여 잔칫상으로 먹고 없어질 것보다는 생의 가장 큰 선물삼아 성지순례를 보내드렸다. 억척스레 살아오신 그 삶속에서의 신의 의미는 특별하시기에 칠순을 기념하여 나도 나가보지 못했던 해외를 보내드렸다. 교회에서 권사의 직분을 가지고 항상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아픈 몸으로 봉사를 하시는 어머님과, 늦게 어머님과 재혼하신 이미 은퇴장로의 직분으로 슬하에 목사아들까지 두고 계시는 아버님... 두 분께는 더 없는 선물이었다. 그렇게 보내드린 곳에서 두 분은 다정히 손을 꼭 붙들고는 젊은 것들(?) 눈꼴 좀 시게 해드린 모양이다.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들마다 두 손을 놓지 않고 계신다. 카메라를 다룰 모르는 분들에게 공항에서 부랴부랴 설명하여 가는 곳곳마다 찍어 신 사진들이 주마간산으로 훑어보기에도 버거울 만큼이다. 그 모든 사진들을 정리해서 디지털액자에 넣어드렸다. 그런데 디지털액자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재중아 사진이 다 없다" 무슨 말씀이시냐면서 전부다 넣어드린 것이 분명한데 사진이 없다니 무슨소리냐 여쭙고는 디지털액자를 떼어들고 왔다. 엊그제 어머님 사진 찍어드리는데 하시는 말씀 "지난번 성지순례 사진이랑 같이 넣어서 줘라" "무슨 소리예요? 그게 왜 여깄어요?" 하고는 어리둥절해 있었다. 어느 한 구석에서 내 기억과 아픔의 편린들을 방치하며 살았던 시간동안 두껍게 먼지가 내려앉은 디지털액자를 발견했다. 새로 찍은 사진들과 같이 정리해서 다시 테스팅을 하는 중인데, 여러차례 테스트를 마치고는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방치를 했던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면서 촬영일자를 살펴보았다. 4년전의 촬영일자가 메타데이터로 확인이 되었다.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자그마치. 그 시간동안에 혹시라도 두 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나는 내 스스로를 용서치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효도관광이랍시고 시켜드린 그분들의 추억이 내가 가진 아픔의 상흔들을 덮어두기 위해 방치된 내 시간동안, 쌓인 먼지의 두께만큼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나의 추억이 아닌 부모님들의 추억이. 그 속에는 나의 아픔도 2장이 들어있었다. 바로 어제같은 기억으로 배웅해 드리면서 공항라운지에서 부모님과 다정하게 촬영된 사진이 또 내 맘을 편치 않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떼어들고 오지 않았다면 그 2장의 사진이 아직도 부모님집의 벽에서 디스플레이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막심한 불효의 끝자락을 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번 뒤틀려진 인생은 이것도 저것도 다 마땅치 않은 것들이 되어버렸다. 이 글을 쓰는 것조차도 내 가슴의 억장은 무너져 들어간다. 낮술이나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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