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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려야 찍는다.


프로건 아마츄어건 누구나 이런 시달림을 받을 것이다. "누구만 많이 찍어줬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누구가 사진빨이 잘 받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 누구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진가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피사체와 사진가 사이의 눈빛을 막아주는 방어막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카메라를 피사체와의 방패막으로 삼는다. 대부분의 피사체들은 카메라를 자신의 거울로 삼는다. 카메라는 피사체와 사진가 사이의 교감점이다. 사진가들은 카메라를 통해서 피사체의 가슴을 담아야한다. 피사체들은 카메라 건너편의 사진가의 가슴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이게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아무리 작품성이 없어도 자기 자식을 찍은 사진은 걸작이 된다. 아무리 실력 없는 사진가여도 자기 엄마가 찍어주는 사진 속의 최고의 모델이 된다. 브레송의 사진을 능가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사진이 된다. 그 사진가와 피사체가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피사체를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뷰파인더 안의 피사체를 음욕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보수를 위해서 찍는 사진도 보수에 연연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보수에 얽매이거나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고 나면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내가 피사체에 대한 애정을 담지 않으면 사진 안에서 그 거리감이 찍혀있다. 꼴려야 그린다. 꼴려야 찍는다. 꼴리지 않고 찍으면 선데이서울이 되고 꼴려서 찍으면 예술이 된다. 언제나 꼴리는 피사체를 만났으면 좋겠다. 글/사진 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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