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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죽으려 준비라도 하는 사람 같다. 사진도 글도 내 보기에도 벅찰 만큼 남겨댄다. 지금 들고 있는 펜조차 뭐라도 남길 수 있을까 들어보았다. 어려서부터 나는 일기라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별다를 것 없던 어린 날의 일상들 속에서 쳇바퀴 돌듯하던 그 일상들을 몇 년 몇 월 몇 일 날씨 맑거나, 흐리거나, 비 오거나, 눈 오거나, 오늘은 숨바꼭질 하거나, 엄마심부름 하거나, 자치기 하거나, 땅따먹기 하거나, 물장구치거나, 말뚝박기 하거나, 썰매타거나, 연 날리거나, 하루에 그 모든 것을 다 해버린 날에는 그나마 했다. 했다. 했다. 했다. 껏~! 꼭 마지막 줄에는 한 줄이라도 채워 넣을 구실삼아 "끝"이라는 문단 아닌 문단으로 장식되었다. 그게 싫었다. 그래서 항상 나의 일기 숙제검사는 소위 "몸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감상문마저 그러했다. 그저 그런 위인전을 읽고는 그저 그런 감상문을 써야만 했다. 독후감 쓰는 법은 배우지도 못한 채 독후감을 써야하는 방학숙제는 뭔지? 숙제라는 것 자체가 그랬다. 일명 "베껴오기" 참고서 없이는 풀지도 못할 문제들을 미리 풀어오기. 그 역시 결국에는 참고서 베껴오기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고흐도 서른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다는 것에 스스로의 위안을 삼으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뿐이지만 나 김재중에게 예술적 감각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른 채 30년이나 살았다는 것이 억울하다. 손재주 많고 조금은 똑똑하다는 이유만으로 디자인도, 비디오촬영도, 사진촬영도, 업무를 위한 페이퍼웍의 글쓰기도, 이해를 위한 사람들에 대한 외침도, 지론을 펼치기 위한 떠벌림도 나의 예술적 감각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했다. 그저 웬만한 전공자들보다 마음먹으면 잘 해낼 뿐이었다. 그저 그런 밥 먹고, 똥 싸고, 놀고, 자는 것 이상의 아니 차라리 그 이하의 것을 일기 아닌 뭔가 다른 것으로 표현해 보라고만 했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내게 그러했다면 내가 가진 기질도, 소질도, 자질도, 감성도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 내 팔목과 손등에는 마치 문신이라도 한 듯 만년필로 낙서가 되어 있다. 평범함을 거부하며 살아왔던 삶이었건만 이제야 그 사용처를 알게 된 지금에는 그것을 모르고 살아왔던 그 세월들이 못내 아쉽다. 조금 평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라이여야 했고 쓰레기라 불리어야 했다. 우등생이라는 이유로 그나마 무마될 수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스스로를 또라이로 칭하는 내 삶과 모습이 이제야 갈 길을 찾아냈다. 물론 공부 잘한 우등생이었던 것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있을 기반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다만 모범생인척 해야 했던 시절이 안타까울 뿐이다. 모의고사 답안지를 전 과목 백지를 냈다하여 일주일이 넘도록 학생부에 끌려가 무릎 꿇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1점에 한 대씩 맞아야 했던 체벌만으로도 충분했다. 각오했던 일이었고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에. 물론 그 일로 인해서 학교에 퍼진 파문은 상당했다. 전교생이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 이후로 백지를 내는 놈들이 수도 없이 나타났다. 그 당시에 썼던 거짓반성문의 그 하얀 종이가 아른거린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로 반성문의 페이지를 채워야 했다. 어떻게 썼는지는 모르지만 나름은 좀 특이하게 썼던 느낌이 든다. 그 거짓반성문보다는 전교 1등과 꼴찌를 다 해본 내 인생이 자랑스럽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고 싶다. 그저 그런 일기가 아닌 특별한 에세이로 다시 채워 넣고 싶다. 글/사진 김재중 http://ZZIX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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