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친구 맺기와 친구 끊기 나는 사람의 굴레 속에 갇혀 살지는 않았는가 싶다. 페이스북 개설이후 정식적으로 활동시작한지 오늘로 2개월 10일째가 되는 날이다. 기껏 해봐야 내 휴대폰 목록에 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 설치과정에서 실수로 자동 연동되면서 친구가 맺어진 사람들의 이야기. 정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연락처 속의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맺어진 친구들에게는 솔직히 미안한 말이지만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세상살이들이 많았다. 먹고 싸고 잔 이야기들. 아니 그나마 싸는 이야기 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결국 먹고 잔 이야기 수준의 대화들만이 뉴스피드 화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메마른 갈증을 풀고자 내 이야기들을 펼쳐나갔다. 그럼에도 내가 느끼는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눈 질끈 감고 뭔가 가슴 적시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 몇을 친구로 삼았다. 그 이후로 퍼지는 친구추가와 친구수락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 글과 사진에 "좋아요"를 표현해준 사람들은 여지없이 친구추가 대상이 되어지고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얻어가며 마치 단편에세이나 시를 읽는 느낌이 되고 있다. 요즘은 하루의 일과(업무) 자체가 페이스북이다. 나 같은 사진작가에게는 어쩌면 그러한 교류자체도 업무의 일환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우후죽순으로 자라는 뉴스피드 화면에서 지쳐 쓰러질 만큼의 소식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중요한 업데이트"만을 선별하여 받아보고 있다. 친구들은 늘어만 가는데 뉴스피드 화면이 고정이 되고 있다. "중요한 업데이트"는 거의 받지 않기, 무시하고 쌩까기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의 소중한 이야기들을 놓치고 있고 하나씩 찾아들어가 다시 설정하지 않는 한은 뉴스피드 화면으로 보이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서글프다. 누구에게 그런 설정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제 글을 보시는 친구분들 속에서 제가 바라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은 이 글에 "좋아요" 한 번 클릭해주시면 설정상황을 다시 확인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기존에 종속된 내 사람사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이 소통의 연결고리가 좋다. 드디어 내가 갈망하던 예술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점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 번 뱉어내더라도 속시원하게 뱉어낼 수 있고 그 뱉어냄이 더러운 가래침이 아닌 가슴 속에서 응어리진 앙금으로 이해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과의 소통이 좋다. 물론 그 속에서는 페친이 아닌 폐친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에 친구 끊기 기능이 발현된다. 2명의 폐친이 생겼고 하나는 강제적으로, 하나는 자발적으로 친구가 끊어졌다. 그리고 오늘은 2명의 페친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친구가 끊어졌다. 2년 연애생활에 6년 결혼생활을 했던 내 전처와 페친의 이별을 고했다. 이혼 후 2년이 넘도록 주위 사람들은 우리의 이혼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소울메이트처럼 우리는 친구로 지냈다. 그러나 새롭게 연결되는 환경들은 그 상황을 쉽게 놓아두지 않았다. 서로의 가족구성원들도 그러하고 새로운 연인들과의 상황 또한 그러하고 업무적으로 중복되는 일들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서로의 페친들의 공유된 수가 시간을 더할수록 계속 늘어갔다. 서로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았으나 그와 연결된 수많은 연결고리들의 시선은 그러하지 못한 듯하다. 서로의 페북을 보면서도 서로의 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해결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새롭게 추가되는 페친구성원들은 정말 좁은 세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두 사람에게 또 다른 연결고리가 되고 또 다른 "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존의 연결고리야 그럴 수 있다 치고 지금의 상황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도록 만든 새로운 페친 역시도 또 다시 엮이게 될 그 위기 속에 넣을 이유가 없었다.지금껏 중복의 이유와는 또 다른 새로운 영역의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서로 이해를 구하고 페친의 친구 끊기가 발현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각에서 구애받지 않는 그런 큰 사람들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각에서 스스로가 구애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에는 더 큰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 그 관계를 종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까짓 페이스북 친구가 문제랴? 어차피 그 짧은 페북 생활 속에서도 가장 많은 "함께 아는 친구"를 공유하고 있었던 사람인데 언제든 부딪히겠지만 그걸 그대로 끌어안고 사는 것은 스스로의 발목을 붙드는 행위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람의 관계에 칼질이 필요 없는 좀 더 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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