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 신 진 호 그 짧은 시간에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는 서둘러 술잔을 비웠다 알지 못하리라 이런 가슴 아픔을 친구가 돌아올 때 나는 웃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상을 다 알거라 생각했던 세상을 전혀 몰랐던 고등학교 시절 그 시절 누구에게나 그랬듯 내 손에도 시집이 한 권 있었다. 훗날 많은 책들에 도전을 해봤지만 그만큼의 정감 어린 글들을 만나지 못하고는 책 표지만 들추었다가 덮어둔 책들만 쌓여있다. 작가들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가끔 라면냄비 받침으로 쓰기 좋다. 남자 나이 40이 다 되어가는데 정독한 소설이 10권이 되질 못한다. 정독한 시집은 10권이나 되려나? 물론 그보다는 더 되겠지만 표현하자면 그렇다. 화장실에서 읽는 책? 화장실에서 읽는 시집? 비슷한 제목만 기억속에서 가물거리는 20년전에 나를 젖게 만들었던 바로 그 시집이 오늘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미 절판되어 버린 옛 시집을 인터넷 고서점을 뒤져서 모조리 주문해버렸다. 어쩌면 저 시집 한 권으로 나는 책을 읽지 못하는 병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어렵게, 고상하게, 어려운 말 쓰지 않으면 배척이라도 당할까봐 써대는 그런 책들에 내 눈과 가슴은 이미 마음을 닫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읽어 본 책도 몇 권 되지 않는 주제에 글을 쓰고 싶어 질때면 꼭 그 당시에 읽었던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결코 어렵지 않은 글 해석하기 어렵지 않은 글 인간내 묻어 있는 그런 글 정말 멍청한 인간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고삐리 시절에 읽었던 그런 느낌을 자아낼 수 있는 글. 그런 글 쓰고 싶었다. 그런 글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일이면 책이 도착하고 풋내나던 고삐리 시절의 그 감성속에 젖어보련다. 아마도 누렇게 변한 종이들과 그 속에서 피어날 팡이냄새에 더욱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날지 모르겠다. 오늘 나는 그 시집을 기다리며 잠을 설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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