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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녀와의 잠자리를 나누고



[첫사랑 그녀와의 잠자리를 나누고]


내 첫사랑 그녀와 20년은 족히 됨직한 잠자리를 다시 나누었다. 고등학교 시절을 끝으로 그녀와 단둘이 누워 잠자리를 가져 본적이 없는 듯싶다. 그녀의 젖무덤에서 포근히 잠들던 시절부터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나이가 들어 장가를 들어 엄마젖을 대신할 여자가 있던 시절이 되어서도 나는 천역덕스럽게 "울 엄마 젖 만지러 왔어요!"라며 어리광을 피워댔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막내아들로서의 가장 큰 효도였다.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음에도 눈물로 가려진 모니터에 글을 넣기가 힘들어진다. . . . 기억의 저편 끝에서 비디오테이프의 선명치 않은 리와인딩처럼 삽시간에 너무 많은 것들이 내 눈물로 쏟아진다. 그녀의 삶…….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내게 부어주신 그녀의 사랑을 감히 형언할 수 없음이 더욱 눈시울을 적신다. 그녀의 사랑을 형언하는 일은 다음을 기약하자. 좀 더 내가 어른이 된 이후이거나 최소한 이 눈물을 주체할 수 있는 그때에 하련다. 내 첫사랑 그녀와 나란히 누워 그녀의 젖가슴에 손을 얹어보기도 하고 내 첫사랑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는 천정을 보며 누워 연애상담을 하였다. 일흔을 훌쩍 넘긴 그녀와 나누는 연애상담. 둘이 한 침대에 누워 손 꼭 붙잡고 나누는 서로의 인생이야기. 상담이라기보다는 서로가 미처 나누지 못한 서로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아니,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였으리라! 결혼과 사별, 그리고 홀로지낸, 막내아들 녀석 혹시라도 삶의 티끌이라도 되실까 싶어 13년의 세월을 홀로이 지내시고는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야 재혼하신 결혼생활 이야기. 첫사랑, 내 여자라 부르는 첫사랑부터 지금껏 단 두 여자를 제외하고는 만나는 모든 여자들을 어머니에게 소개시켜 드렸기에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어머니 결혼과 이혼, 그리고 다시 시작된 연애까지도 눈물로 지새우신 어머니 손을 붙들고 나누는, 쉬울 것 같으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사랑과 인생의 이야기. 첫사랑부터 지금까지 소개드린 여자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계시는 어머니 그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면서 입에 각인되었기에 그 이름들을 외우고 계시는 어머니 눈물 없이는 쓸 수 없는 이야기인 듯하다. 어머니라는 이름에 대해서. 마시던 커피 잔을 소주잔으로 바꾸어야 눈물이 멎을 것만 같다. 각성은 그만하고 이제 잠시 정신줄을 놓아줘야 눈물이 멎을 것만 같다. 한참이나 멀어져버린 큰 큰어머니의 장례식장에 둘이 마주 앉은 밥상에서도, 아들집에 가서 자겠다고 따라나선 동행 길의 차안에서도, 늘 이야기하고 싶던 가장 큰 존재의 사진이 없었음에 아쉬워하며 사진을 찍어야겠다. 생각한 순간에서도, 내 카메라 앞에 세워둔 어머니의 그 어색한 웃음 앞에서도, 그리고 카메라 액정화면 위로 올라선 어머니의 주름 앞에서도, 그냥 "엄마"라는 그 존재 앞에서도, 나란히 누워, 우리 얼마 만에 단 둘이 누워 보는 거냐는 질문에 그녀 역시도 20년은 된 것 같다는 답변에서도, 새벽시간까지 깨어서 아들과 얘기를 나누고 잠든 노인네의 거친 숨소리에도, 소리도 없고, 표정도 없는 눈물이 내 뺨에 흘렀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만져본 내 뺨에는 어김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혹시라도 들킬까 싶어 게 눈 감추듯 닦아내고는, 나 자신에게도 숨기듯 또 천역덕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야 했다.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 내가 겪어야했던 아픔들을 차마 어머니의 죄과처럼 생각하실까봐 두려워 말씀드리지 못했던 내 연애사의 아픈 이야기들도 지난 15년의 세월 만에 처음으로 말씀드렸다. 여자들의 집안으로부터 결혼을 반대당해서 힘들고 괴로웠던 이야기를 어찌 내 어머니에게 할 수 있었으랴? 가난과 편모아래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반대당한 이야기를 어찌 당사자인 어머니에게 할 수 있었으랴? 혹시라도 자기 아들이 못나서 여자들을 아프게 했는가라는 죄책감으로 더 힘들어하실 어머니를 위해서 20년만의 둘 만의 잠자리에서 겨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주 짧게, 그녀의 죄책감으로 다시 생각되지 않을 만큼만으로. 아들이 너무 잘나서 분에 넘치는 여자들을 만났던 것처럼. 예순을 훌쩍 넘기고 나서 시작하신 한 마디 말을 어머니는 입에 달고 사신다. “사랑해!” “아들, 사랑해!” “누구야! 사랑해!” 이미 일흔을 넘기고 중반으로 들어선 시골노인네의 입에서 나오는 사랑한다는 말은 늘 내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본인조차 사랑한다는 표현을 듣는 것이 어색했을 삶을 살았던 시골노인네가 내뱉기 시작한 사랑한다는 말. 재혼을 하시고는 10남매가 되어버린 두 집안의 모든 자식들과 며느리들과 사위들과 손주들에게 늘 전화통화로 "사랑해!"라고 하시는 그 단어. 쉰이 넘어서도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새벽이면 늘 내 단잠을 방해하며 더듬거리며 성경책을 읽어 내려가시던 까막눈 세월로 인생의 거의 모든 시절을 보내셨던 그런 시골노인네의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는 내게 무척 남다르다. 장난스러이 찍는 사진의 판자때기에 "니 애미다"라고 직접 써달라는 내 부탁에 1년에 성경을 2번은 통독하시는 그녀는 내가 쓸 줄 알아야 쓰지!라며 답변하셔야 하는 무지함을 아직도 달고 사시는 그 분이 담아내는 "사랑해!"의 의미가. 그 이전에는 어머니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특별히 들어본 적 없는 기억 속에서도 분명 그 충만한 사랑을 느꼈건만 그녀가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랑해라는 말에 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대던 그 말을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하지 못했음에도 내 어머니는 전화통화에서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내게 전달해 주신다. 며느리뿐만 아닌 내가 만난다는 여자에게도 사랑한다고 전해달라고, 직접 전화를 바꾸어달라시면서 "사랑해!"라고 말씀하시고 끊으시는 내 첫사랑 그녀에게 나는 열 번에 한 번만이라도 내가 먼저 말하자고 다짐을 한다. 정말 흔하디흔한 그 사랑한다는 말이 왜 어머니 앞에서는 쉽게 터지질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흔넷의 시골노인네보다 더 표현력이 부족한, 예술이라는 허물을 둘러쓴 병신일 뿐이다. 내가 그녀에게 가진 가장 큰 죄책감은 그녀의 기도에 대한 허탈감을 안겨드린 것이다. 내 지난 연인들의 이름을 나조차 기억하기 힘들 때가 있건만 내 어머니는 그 이름들을 기억하고 계신다. 그녀의 기도 속에서 얼마나 그 이름들을 부르짖으셨으면 내 지난 연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실까? 그 이름이 각인될 즈음이면 나는 또 다른 이름을 숙제처럼 안겨드려야 했다. 헤어짐의 이유는 전혀 말씀드리지 않고 그냥 다른 이름을 숙제처럼 안겨드렸다. 그리고 마지막 이름이길 바라며 나는 결혼을 하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를 그녀에게 해드렸다. 자식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가장 큰 효도라는 생각으로 내 어머니 앞에서 나는 갖은 애정행각을 보여드렸다. 제대로 된 뭔가 하나 해드리기는커녕, 바쁘다는 이유로 얼굴도 자주 뵈러 가지 못하는 죄책감을 자식이 행복해 한다는 모습으로 사회적 잣대속의 효도를 대신했다. 내 속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워먹지 못한 천하의 못된 놈이라는 말도 들었다. 아마도 어머니의 "사랑해!" 표현은 내 결혼시기와 비슷하게 터진 듯싶기도 하다. 특히나 며느리들에게는 친히 이름을 불러주신다. "누구야! 사랑해!"라며 말씀하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죄를 저질렀다. 자식의 행복함이 가장 큰 효도라 생각했던 나는 이혼을 해버렸다. 그런 시어머니의 존재가 있음에도 이혼으로 이끌어 가게 만들었던 그 사람이 그리도 미웠다. 아니, 분명 내가 부족했으리라! 결국 그런 어머니에게 아들놈 잘 살고 있다는 의미로 또 한 여자의 이름을 안겨다 드렸고 이제는 그 이름을 입에서 떼어내시라 말씀드렸다. 어쩌면 이제는 두 번 다시 어머니 입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불리워지지 않도록 할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내 연애의 중심은 결혼생활을 항상 꿈꾸었기에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최소한의 다짐은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천연덕스런 농담을 계속 던져드렸다. 남의 살림에 손대는 것 아니다. 남의 살림에 손대면 어디 가서 가정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것처럼 욕먹는다. 우리 금순이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들으면 안 되니깐 설거지도 하지 말고 아침에 밥 차리지도 말라 일렀다. 싱크대에 산처럼 쌓여있는 밀려놓은 설거지도 어머니가 손대기 전에 처리해야 했고 아침밥상을 약속드리고는 평소 먹지도 않는 아침을 위해서 일찍 잠들어야 했고 그리고는 약속한 아침밥상을 위해서, 끊겠다고 다짐한 소주 두 잔을 빈속에 훔쳐 마시고는 잠을 청했다. 그녀를 위해서 아침밥상을 준비한다. 노련한 칼질솜씨에 주부경력 55년차의 어머니가 놀라신다. 미리 우려낸 사골국물에 만두와 양념을 넣고는 청양고추를 팍팍 넣어서 만두 국을 하고 새로 앉힌 밥솥이 허연 수증기를 뿜으며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노련한 홀애비의 상차림을 마쳤다. 그리고 그녀가 보내준 배추김치와 갓김치를 꺼내어 밥을 먹는다. 늘 청양고추가루를 갈아서 보내주시고 늘 매운 김치를 담가서 보내주신 어머니를 위해서 청양고추를 내 사랑만큼 듬뿍 넣어드린 사골만두국을 어머니는 드시지 못했다. 그녀가 담가서 보내준 김치조차 제대로 드시지 못했다. 그녀는 매운 걸 못 드신다. 20년 동안 떨어져 살면서 내 식성은 변했고 나는 내가 좋아하듯 어머니도 당연히 좋아하시리라 믿었다. 그녀가 보낸 배추김치와 갓김치만으로 밥을 먹으며 대가리에 땀 흘리던 나처럼 어머니도 좋아하시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운 걸 못 드신다. 어머니는 짜장면뿐만 아니라 매운 걸 못 드신다. 자식을 위해서 짜장면 집을 가신 것뿐이다. 진짜로! 아내 부(婦), 예도 례(澧)라는 이름을 가지신 우리 어머니의 가명은 금순이다. 부례나 금순이나 거기서 거기건만 고금순이란 이름을 쓰신다. 늘 "굳세어라 금순아!"라며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를 놀리곤 한다. 매워서 제대로 드시지도 못한 밥그릇들을 설거지 하시는데 그것마저 못하게 하기에는 참 머쓱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금순이 착하네! 설거지도 잘하고!"라며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늘 말씀하신다. 본인이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본인이 죽으면, 본인이 늙어 힘 없어지면 그것도 못 할 테니 자식들 위해서 뭔가 할 수 있을 때 그냥 받아먹으라 하신다. 그런 나는 아직 힘이 있음에도 어머니를 위해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인생사 통틀어 짐만 안겨드리고 못난 아들의 죄과 같은 삶만을 드렸다. 어머니를 배웅키 위해서 찾아간 센트럴시티터미널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나름 똑똑하다고 깝죽거리는 놈이 "터미널" 세 글자 찾기 힘든 곳을 20분 넘게 헤매이면서 어머니도 나도 두 손을 놓지 않았다. 터미널 대합실에서, 그리고 승강장에서 두 번 어머니를 안아드렸다. 파마머리 같은 곱슬머리를 산발하고는 스키니바지를 입은 정체불명의 마흔 다 된 아저씨와 군산행 버스 앞에서 껴안고 있는 할머니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더라. 더욱 자랑스러이 껴안았다. 내 엄마라고! 돌아오는 길에 주차비가 아까워 책 두 권을 사들고 주차요금을 면제 받은 기쁨과 새로 산 두 권의 책을 읽을 생각과 약간의 또는 커다란 허탈감에 젖어 도착하고는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바로 지금 이 문장을 쓰는 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다짐처럼 나는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인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건강하시구요 아버님에게도 건강하시라고 전해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게임에서 진 복수라도 하듯 사랑한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하고 끊으셨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내내 글자 수 만큼 흘렸던 내 눈물이 전화벨소리와 함께 그쳤다. 다만 가슴이 숨을 쉬기가 조금 힘들 뿐이다. 지금의 이 적막감은 뭘까? 더 이상 세상의 끈을 붙들기 싫을 때가 몇 번 있었지만 나는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서 그 얼굴에서 가장 큰 눈물을 흘리게 만들, 먼저 눈감는 불효만큼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억지 같은 호흡을 연명하고 살아내었다. 내 진정한 첫사랑 그녀가 눈감기 전에 다시금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어젯밤 그녀와 나눈 대화처럼 두 사람이 같이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만큼 어려운 것은 세상에 없는 듯하다. 사랑할 때만큼은 선수라고 자부하는 나도 그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랑이 늘 곁에 있다. 내 어머니의 사랑! 이쯤 되면 마지막 문장을 마무리하면서 써야할 단어가 분명하건만 글로써 쓰는 그 말조차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어머니! 사랑해요!"


글/사진 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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