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죽음 같은 시를 쓰고 시 같은 죽음을 쓰고 지우고

(전략) 그러다가 하얀 새벽이면 명동 성당, 혹은 모래내 성당의 쓸쓸한 종소리 들으며 죽음 같은 시를 쓰고 시 같은 죽음을 쓰고 지우고 "이제 무너지고 있어요." (후략) (신진호 시인 / 아름다운 패잔병 / "여름, 1987"中)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죽음 같은 시를 쓰고 시 같은 죽음을 쓰고 지우고 죽음 같은 시를 쓰고 시 같은 죽음을 쓰고 지우고 죽음 같은 시 시 같은 죽음 쓰고 지우고. 지난 해, "죽음"이란 시리즈를 구상해보았다. 그저 죽은 짐승의 시체를 찍는 것 만으로 될 것 같지 않았다. 아직 내가 가진 감성으로는 그걸 표현해낼 수도 없었고 또 그걸 이겨낼 자신도 없었다. "죽음"을 다루면서 나도 죽어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의 두려움에 시작조차 두려웠다. 어느 날, "죽음"이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사진의 문의가 들어왔다. 혹시 찍은 사진중에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 없느냐며. 지난 해 햇살 눈부신 봄날에 폭우로 물이 불어나 뭍으로 올라 죽은 물고기 시체가 떠올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죽은 물고기 시체를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실상의 허상"이란 제목 아래 글도 썼었다. 그리고 보면 내 사진들이 모두 머릿속에 찍혀있다. 그저 카메라로 찍지 않고 내 눈으로 찍는 기분이다. 어느 순간 길가다가 사진하나를 보고는 가던 길을 멈추어 보는 일도 있다. "내 사진이다" 광고 포스터나 내가 찍은 사진으로 만든 인쇄물을 스쳐보내기만 해도 내 사진은 금방 알아낸다. 무슨 얘길 하는건지? 여튼. 그렇게 죽음을 사진으로 찍노라면 그 무너질 것 같은 감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시작과 함께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제 그 쉽지 않은 길을 가보려 한다. 죽음. 죽음. 죽음. 훗날 그 방향이 어떻게 흐를지 모른다. 당장은 길바닥에 짓이겨진 짐승의 시체를 찍겠지만 여느 예술가처럼 나의 죽음을 찍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휩싸인다. 신진호 시인은 왜 시 쓰기를 그만두었는지 모르겠다. 죽음을 쓰게 될까봐 그랬을까? 글/사진 김재중 http://zzixa.net http://facebook.com/zzixa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