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 그림 : 원래 그려진 그림의 퍼즐조각과 관계없이 그저 철문의 용도만으로 쓰이는 순서 섞인 그래피티) 문래동에 대한 단편이란 글을 썼다. 카메라를 들고 가고 싶지 않았던 그곳에 카메라를 가져갔다. 예술과는 관계없는 자들에 의해서 난도질되고 새벽이 되면 그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그곳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지 않았다. 나도 예술나부랭이를 하는 작자라면 그들의 아우성 소리를 카메라로 담으면 안될 것 같은 최소한의 예의같은 것이었다. 어느 사진클럽에 가입했다가 자신들은 예술은 아무 관심없고 그냥 사진만 찍으면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불과 1주일전에 문래동 예술촌에 출사나가서 그들의 공간을 찍었다는 자들로부터. 하루가 지나고 2건의 촬영속에서도 미처 혼을 불태우지 못하고 돌아오는 아쉬움속에서 나는 문래동으로 향했다. 지금의 내 심정과도 같을 그들의 공간에 들어섰다. 차를 세우고 내리는 순간 내 온몸의 관절들이 마비가 되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 다리를 절룩거리며 그 거리를 걸었다. 마치 철강재들이 내 어깨를 짖누르는 듯 한 무게감을 느껴야 했다. 무릎 아래가 내 몸 아닌듯 무릎에서 떨어져 나가는 통증을 느꼈다. 그렇게 힘겹게 몸을 끌고는 복수심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의 삶을 예술가들의 생활을 그저 눈요기거리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너희들이 보고싶은 것만을 보고 찍어대던거 말고 너희들도 분명히 보았음에도 예쁜 사진 찍기위해서 외면했던 것들을 기껏해야 옥상에 버려진 소파하나에 많은 의미를 담아보려 한 그들에게. 그 철강더미들 속에서 고뇌하는 영혼들이 소리치는 소리를 또 들어야했다. 새벽시간 곳곳에서 들리는 공압기계에서 에어 빠지는 소리 자동으로 돌아가는 에어콤프레셔의 펌프 가동되는 소리 녹물이 또 다른 녹슨 철더미로 떨어지는 소리 무언지 모를 아무도 없이 자동으로 작동되는 기계음들속에서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달랑 불켜진 몇 곳의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불빛들의 퍼짐은 그 소리들보다 더 강열하게 무성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소리를 느낄 수록 내 무릎은 가마솥에서 우려내진 도가니수육마냥 계속 물컹거려졌고 그럴 수록 나는 더욱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예술가의 삶은 동경하지만 예술가의 생활은 결코 따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서.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예술가가 혼을 불태운 흔적도 없고 예술가가 혼을 불태울만한 환경도 없었다. 단지 그들이 아우성처럼 그려놓은 벽화 몇점들만이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그들이 점령하고파서 꽂아 놓은 옥상의 깃발만이 새벽하늘 구름 밑에서 애처롭게 펄럭이고 있었다. 때로는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으로 그리다만 철문의 그림들 결코 미술을 하던 사람의 그림은 아니었으며 아우성 쳐보려 그리기 시작했지만 차마 끝내지 못한 그림들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 아우성을 보이기 위해서 그리기 시작했지만 그림을 그려갈 수록 처절해지는 그곳의 삶에 대한 비관이 그림에 남아있었다. 나도 어쩌면 지금의 월세에 허덕이다가 결국은 문래동과 같은 결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공간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몸둥아리 하나 거처할 공간을 찾아서. 결코 안식처가 될 수 없는 그런 곳에 움츠려 뭄동아리 누일지 모른다. 소주가 땡긴다. 오늘은 마시지 않으려 했던 소주가 또 땡긴다. 내일 아침 또 다시 머리통 붙들어야 할 불순물 없는 깨끗한 물에 희석된 알코올. 세상의 예술혼들이여! 강건해지길...... 그래야 건강한 예술을 낳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그저 예쁜 예술말고 진정한 아름다운 예술! 그리고 때로는 힘들다 밖으로 소리내어 아우성도 치고.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당당하게 지껄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어쩌면 뒤늦게 시작한 예술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어린 시절부터 시작했다면 이런 소리 못할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그렇게 순응해버렸을 나를 생각했다. 뒤늦게 시작한 덕택으로 분명하게 중간자적인 입장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재는 게편이라고 항상 뱉는 말은 예술가 편이다. 좀비들 때문에! 글/사진 김재중 http://ZZIX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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