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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처 그리고 발악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야고보서 1:27



나는 이혼남이다. 나는 과부인 셈이다. 과부가 과부속을 안다 했다. 나는 이런 기도를 한다. 당신만을 바라볼 줄 아는 내가 아닌 세상을 돌아볼 줄 아는 내가 되게 해달라고. 내게는 수 많은 달란트가 있다. 너무 많아서 주체를 못한다. 그중에 소중하게 쓰일 내 달란트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 표현하고 대신 말하고 대신 보여주는 데 쓰일 수 있는 자기희생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또라이 기질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사진을 좀 찍고 글을 좀 쓴다. 솔직히 사진도 글도 전공조차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배워본 적도 없다. 그냥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내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내 아픔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내 아픔으로 누군가가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달란트이다. 내 아픔이 시작되면서 나는 사회로부터 고립된 소통의 단절을 겪었고 스스로의 족쇄를 가지고 마음의 담을 쌓고 살다가 같은 담을 쌓고 사는 자들 틈에 들어가서 소통의 벽을 허물고 동화되고자 하기를 몇차례 시도하다가 그 속에서도 배척되어 버렸다. 그러는 과정속에서 나의 그릇이 오히려 더 큰 그릇임을 깨달았다. 내가 남의 그릇 위에 놓이기에는 너무 큰 그릇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타인들에게 배타적 존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나는 내 스스로가 이혼자들의 소통을 위한 클럽을 개설하였다. "안식처 그리고 발악"이라는 기괴한 이름을 가진 상충적인 단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클럽을 만들었다. 그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배척의 상황을 겪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기를 꿈꾼다. 소통의 벽이 없는 자유로운 곳이길 꿈꾼다.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허물없이 발악할 수 있는 공간이길 꿈꾼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자신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길 꿈꾼다. 줄 그어 놓고 "금 밟으면 아웃"이 아닌 금을 밟아서라도 발악할 수 있는 공간이길 꿈꾼다. 어쩌면 그들과 동화할 수 있고 그들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내 또라이적인 신앙때문일 수 있다. 다분히 모범생이어야만 하는 크리스챤이 아닌 세상을 돌아볼 줄 아는 세상속에 존재하는 크리스챤으로서 그렇게 거지 나사로와 함께 할 존재였으면 좋겠다. 모범생인 부자에게는 누구나 접근한다. 냄새나고 술에 쩔어 있는 나사로에게는 접근하지 못한다. 내가 냄새풍기며 술냄새 풍기며 나사로에게 다가간다. 누가 날 세속에 물들었다 할 것인가? 나는 세속에 물든 것이 아닌 세속안에 존재하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그 세속을 안식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곳을 나의 안식처로 택할 것이다. 글/사진 김재중 (zzix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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