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말이 그리도 많은 건지? 카메라는 들고 다니지 않아도 만년필과 수첩만큼은 항상 손에 들려 있다. 적당하게 개조되어 수첩사이즈로 잘라놓은 노트형 포스트잇 메모지 그리고 한 쪽에는 만년필이 꽂힐 수 있도록 공간도 만들어졌다. 특별한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면 그저 낙서라도 하려고 펜뚜껑을 열어본다. 낙서라도 해보려 시작된 잉크의 자욱이 지금 이 글로 써지고 있다. 그저 입에 발려 내뱉어지는 인사치레 같은 말보다는 들어주는 이 없을 것 같아도 좋을 '글'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의 말이라도 내뱉어지기 보다는 남겨지길 원하는 듯하다. 매일 밤마다 한 잔 술과 함께하던 체온을 나누는 것보다 더 좋았다던 대화가 끝이 났다. 그와 함께 나의 결혼 생활도 끝이 났다. 그때처럼 아무런 가식 없이 아무런 경계 없이 아무런 부끄럼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일까? 사람들이 소설 속이나 소녀경 같은 곳에서 문자를 빌어 쓰던 단어들이 내 글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결국 일상 속에서 사용하던 단어들이건만 악플러 같은 작자들이나 익명성 같은 욕지거리에서나 사용하는 단어들이 내 글 속에서는 점점 당당해진다. 아무런 가식도 아무런 경계도 아무런 부끄럼도 없던 그런 대화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솔직함"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이자 내 인간관계 형성의 모토이다. "솔직함"이 "솔직함 따위"로 전락될 것 같은 자리에서는 그저 입을 닫아버린다. 괜한 허튼소리에 정을 맞기도 싫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한다. 닳고 닳아 맨질거리는 해변의 조약돌이고 싶지 않다. 그저 그렇게 모나지 않게 해변에 깔려 존재의식 없이 그곳에 안착해 살고 싶지 않다. 빛을 발하고 싶다. 그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을 나누는 삼각으로 모난 프리즘보다는 수많은 빛으로 쪼개어 어느 빛깔 어느 형태로도 단정 지을 수 없는 그런 빛으로 투영시키고 싶다. 비록 다이아몬드는 못될지언정 그렇게 아름답게 빛을 쪼개어 낼 수 있는 큐빅이라도 되고 싶다. 꼭 가공되어야 하고 일률적인 각으로만 깎여야 한다면 땅속에서 갓 꺼내어진 제멋대로 자라 제멋대로 뻗어버린 크리스탈이고 싶다. 그리고 내 안에서 내지르고 싶은 소리를 나만의 음색으로 아무런 가식도 아무런 경계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투영시켜내고 싶다. 글/사진 김재중 http://zzixa.net http://facebook.com/zzix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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