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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똥을 싸자!


초심을 잃은 것일까? 처음 글쓰기라는 것을 시작하던 무렵, 나는 어려운 글을 절대 쓰지 말자 했다. 나는 어린 시절, 문학보다 철학을 먼저 접했고, 그렇게 파고들기 시작한 철학책 한 권을 통해서 책을 접었다. 빨간 표지에 동아줄이 또아리를 틀고는 올가미를 하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라는 책이다. 아직도 기억한다. 문학이라고는 고등학교 시절 몇 권 읽었던 시집 전부였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난독증이 내게도 있었다. 어찌 책 한 권이 사람으로 하여금 책 그 자체를 접어버리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글쓰기를 시작한 후로, 아니 정확하게는 가슴이 찢어지도록 외롭던 시절에, 나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긴 글이 힘들다고 짧게 써달라고들 했다. 짧게 썼더니 시가 되더라. 그렇게 쓴 시가 몇 백 편이 된다. 그렇게 시를 쓴 이유는 단 하나다. 그냥 내 이야기를 통해서 누군가가 외롭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지껄이다보니 정작 나 자신은 위로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날 촬영의뢰를 받았는데 어시스턴트가 이외수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다. 그 날로 나는 인터넷의 이외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어떠한 이미지를 그려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인물파악을 위해서 밤을 꼴딱 새면서 자료들을 찾아봤다. 화천의 감성마을을 찾아갔고, 이외수 선생님의 책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놈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정말 예의 없는 인간이었다. 촬영이 끝난 후, 선생님은 늘 그러셨다는 듯 책 한 권-당시에 새로 집필하신 ‘시불류 아불류’-을 주시면서, 글도 하나 써주셨다.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라는 글귀를 써주시면서 ‘찍는 이의 고통이 보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사진을 찍으라!’ 하셨다. 접대성 빈말인지? 아니면 내가 지금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 또 글도 나불거리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아셨는지? 지금 내 손가락은 카메라 알러지 때문에 피고름이 맺히고 있다는 것을 장갑을 투시해서 본 것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를 위로 받고 싶어서 내 영혼을 위로할 만한 책을 찾았고, 나는 이외수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 읽고 얼굴 본 것도 아니고, 얼굴 보고 소설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약간의 죄책감도 없지 않았다. 얼마나 싸가지 없는 짓이던가?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내가 난독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책을 접은 이후로도 종종 다시 책읽기를 시도했으나, 써놓은 글의 내용에 대한 반발감과 함께, 눈은 글자를 읽어 내려가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한참을 읽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몰라서 다시 책장을 뒤로 돌아가서 읽기도 했다. 그런 내가 난독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외수의 소설을 통해서 알았다. 나는 그 이후로 한 번에 읽혀 내려가지 않는 글을 보게 되면 내 난독증을 핑계대면서 억지로 읽어대던 것을 그만 두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지혜를 터득했다. 내 난독증이 문제가 아니고, 읽기 어렵게 써 놓은 글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난독증이 있을 수도 있다. 남들은 잘만 읽더라! 그렇게 20년이 넘도록 책을 보지 않은 놈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절대로 어렵게 쓰지 말자! 책 한 권으로 인해서 내가 책을 접어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다짐을 했다. 그렇게 글을 쓰다가 페이스북을 접했다. 별로 보아줄 것 없는 블로그에서 글쓰기를 하다가 페이스북을 접하고는 휴대폰에 등록되어 있는 자동으로 연결되는 지인들을 제외하고, 친구가 되기 시작한 사람들은 문학인들이다. 점점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접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는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매말라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외로웠다. 그런데 그들을 접하고는 나 스스로에 대해서 자격지심을 느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긴장감이 돌았다. 그 긴장감이 낳은 결과는 그들 흉내내기였다. 그들의 페이스북에서 행간만 띄우면 시가 되는 줄 아느냐는 말을 보기도 하고, 어느 시인은 자기 페이스북에는 나보다 심각하게 맞춤법도 틀리는 글을 쓰고 있으면서 내 페이스북에 와서는 ‘공부 좀 하시죠!’라고 시건방을 떠는 댓글을 달고 나갔다. 나는 오기가 들었다. 내가 그들을 흉내 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냥 내 스타일의 글을 썼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이 오늘날에는 소설도 아닌 것이 엄청난 장문을 써대고 있다. 사람들은 책을 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 쓰고 있는데도 계속 글을 써보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자유시인’이라고 내 스스로 호칭을 달아 버렸다. 사실 문학인들 사이의 페이스북을 보면서 자신들의 전유물 같은 글쓰기를 하는 다른 사람들을 비하하는 글들을 보고는 오기가 생긴 것이었다. 이런 저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지가 3년이 되었나? 가끔 내가 사진 찍는 놈인지 글을 쓰는 놈인지 나도 구분하기 힘이 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테스트 하기 위해서 사진과 글을 한꺼번에 올리던 것을 그만두고 글만 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나를 자극하기 위해서 사진 없는 글은 결코 없다는 신념을 가졌다. 농담 한 마디를 하더라도 반드시 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두고, 그런 농담 한 마디라도 지껄이기 위해서 세상 이야기에 대한 많은 사진을 찍어야 했다. 다시 사진 없는 글을 써보자고 결심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에 대한 베타테스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단순히 사진만 올린 게시물보다 반응이 더 좋았다. 거만해지기 시작했다. 흉내내기 글을 쓰지 말자 해놓고는 간혹 흉내내기 글을 쓰고 있더라. 어느 날 페이스북을 통해서 한 친구를 알게 되었고, 전화통화로 몇 시간씩 떠들기도 했다. 자신은 문창과를 나왔는데 글쓰기라는 것이 잘 쓰는 기술을 배워서 기본점수 따듯 쓰는 글이 싫어서 절필을 했다고 하더라. 주변의 문학인들의 글에서도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이 싫더란다. 내 글에는 그런 냄새가 없어서 좋단다. 그때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책을 읽어보지 못했고, 어쩌면 내가 책을 읽지 않았기에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어쩌면 지금도 흉내 내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쓰듯 게시판에 글을 쓰듯 마침표만 들어가면 엔터키를 눌렀고, 두세 줄의 글이 있고나면 빈 줄을 삽입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마침표를 찍고 나서도 계속 할 말이 남아 있고, 혹시라도 졸필의 글을 오해할까봐 부연설명까지 집어넣고 있다. 내가 다시 읽기에도 버겁다. 출판물이라면 물리적 위치가 정해져 있어서 읽어 내려가는 위치를 감각적으로 알겠지만 모니터로 접하는 글을 스크롤링으로 내리기에는 불편함이 없지 않다. 그런데 빈 줄 넣기는 작문법에 없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말만 길어지고 읽기만 힘들어졌다. 빈 줄 좀 넣어달란다. 읽기 힘들단다. 사실 나도 힘들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무슨 말을 했던 건지? 그깟 작문법에 따르자고 빈 줄 없이 글쓰기를 하자고 읽기 힘들어 읽어보지도 못할 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출판 계획도 없다. 아니 어느 출판사에서 제의도 없고, 내 돈으로 하자니 돈도 없다. 나중에 정말 출판하자고 제의가 들어온다면 그때 다시 정리하더라도 그냥 지금은 내 스타일대로 내 맘대로 쓰겠다.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전부 내가 싸 놓은 똥이다. 화장실 변기에 막혀서 내려가지 못하는 ‘글’보다는, 시원스레 내려가는 ‘똥’을 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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