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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詩 : 도종환


꽃들은 향기 하나로 먼 곳까지 사랑을 전하고

새들은 아름다운 소리 지어 하늘 건너 사랑을 알리는데

제 사랑은 줄이 끊긴 악기처럼 소리가 없습니다.


나무는 근처의 새들을 제 몸 속에 살게 하고

숲은 그 그늘에 어둠이 무서운 짐승들을 살게 하는데

제 마음은 폐가처럼 아무도 와서 살지 않았습니다.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늘 한복판으로 달아오르며 가는 태양처럼

한번 사랑하고 난 뒤

서쪽 산으로 조용히 걸어가는 노을처럼

사랑할 줄을 몰랐습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면서 얼지 않아

골짝의 언 것들을 녹이며 가는 물살처럼

사랑도 그렇게 작은 물소리로 쉬지 않고 흐르며 사는 일인데

제 사랑은 오랜 날 녹지 않은채 어둔 숲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마음이 닮아 얼굴이 따라 닮는 오래 묵은 벗처럼

그렇게 살며 늙어가는 일인데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글 도종환

사진 김재중

도종환 시인의 글에 제 사진을 입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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