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세월동안 나에게는 17키로의 몸무게가 친구처럼 달라붙었다. 잠시잠깐의 시간이 아닌 10년의 시간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비록 6인치에 달하는 배둘레~햄이 늘었지만 내 뱃속에는 아직 왕자가 남아 있다 말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믿지 않으려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수영강사를 가르치는 수준의 수영강사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믿지 않으려 했다. 계속되는 다이어트 시도에도 불구하고 만신창이가 된 나의 허리와 무릎과 어깨로 인해서 수영조차 운동답게 하지 못하는 신세였다.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함께 적당히 의도된 다이어트와 그저 재활치료 삼아 하는 수영으로 인해서 어느새 나는 18키로의 체중을 빼버렸다. 원래의 몸무게보다 1키로가 더 빠져버렸다. 고등학교 시절의 몸무게로 돌아갔다. 오히려 다시 2키로의 몸무게를 늘려야 했다. 10년 세월동안 변해버린 내 신체균형 변화이기도 하겠지만 불혹의 나이를 불과 2년 남긴 나의 왕자는 어린 시절의 그 모습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으려 했던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일부러 만들지도 않았다. 그냥 원래 존재하던 것이 나왔을 뿐이다. 눈으로 확인시켜줘도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 한다. 뱃살이 접힌 거라 말한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그 실체를 확인시켜 주려 한다. 사람의 가치관이라는 것도 그렇다. 자기와 조금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틀렸다 말한다. 아니 틀리다 믿고 싶어 한다. 그럴수록 나는 내 가치관이 틀리지 않고 조금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아니 어쩌면 그리 다르지 않고 내겐 분명한 가치관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다지 말이 많지 않은 편에 속한다. 웬만해서는 특별히 내 주장이나 의견을 말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 문제에 대해서만 말하는 편이다. 누군가 나를 공격했을 경우에만 말하는 편이다. 혹시라도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당신과의 첫 대면에서 대인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말을 많이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경우를 보았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말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내 주장을 펼칠 줄 안다는 이유로 나는 말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요에 의해 내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걸 틀렸다 말하면 원칙을 이야기한다. 왜 원칙을 이야기한 뒤에야 내 의견을 수긍하는 건지? 왜 원칙을 이야기한 뒤에야 내 의견이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지? 치졸한 인간군상들! 그래놓고는 나보고는 잔인하다 말하고 냉정한 사람이라 말한다. 내가 조금 다르다고 그것을 틀렸다 말하는 당신들이 틀린 것이다.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때로는 조금 앞서갈 뿐이다. 아직 생각지 못한 것들 때문에 내가 꼭 다른것 만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을 확인시켜주려 한다. 보여주려 한다. 내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10년세월 이전에 내게 틀렸다고 말한 것들이 이제는 당연지사 현실로 다가왔다. 참 수많은 것들을 내가 틀렸다 말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의 현대사회에서는 10년 전에 내가 추구했던 가치관들이 일상화 되어 버렸다. 우습다. 당시에 나를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따지고 싶다. 나를 틀렸다 말해놓고는 왜 당신은 내 말대로 살고 있느냐고! 그다지 부질없다. 점점 내 가치관을 그저 입으로 뱉어내는 것이 아니고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그로인해 나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글들이 쌓여간다. 어느 것 하나 시간이 흐른 뒤에 살펴봐도 결코 창피한 글은 없다. 나의 문장력 부족으로 인한 부끄러운 글들도 사실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문장력보다는 내 가치관이 우선이기에 절대 삭제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더욱 성장해 가는 것이다. 꼭 눈으로 보여줘야만 하는 세상! 아름답자고 말하지만 내가 조금 다르다고, 내 가치관이 자신과 조금 맞지 않는다고 그렇게 비웃어 대는 인간들을 향해서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 나는 분명 성인군자도 아니고 독실하지도 못한 사이비 크리스챤일 뿐이다. 그 속에서 내가 느끼는 인간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계속 이야기해 나갈 것이다. 사람사이의 잣대를 조금씩 허물어 가고 싶다. 알기 전에는 모르는 세상을 좀 더 이해심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세상으로 만들고 싶다. 아픔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고 싶다. 아픔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분명 나는 상처받을 것이다. 상처받을 때 받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박수 받지 못하면 떠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훗날 아주 작은 나의 글과 사진들로 인해서 조금은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더욱 또라이가 되어간다. 또라이가 되지 않으면 세상의 아픔을 보지 못한다. 남들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까지 생각의 폭을 넓히지 못하면 세상의 아픔도 아름다움도 보지 못한다. 그저 예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련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저 울타리 너머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련다. 글/사진 김재중 http://ZZIX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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