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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예! 라고 말할 때 아니오! 하면 칼 맞는다.


모두가 예! 라고 말할 때 아니오! 하면 칼 맞는다. 모두가 아니오! 라고 말할 때 예! 해도 칼 맞는다.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학급의 학생수가 55명 정도였다. 국어선생님이 물었다. 장모음과 단모음에 대한 질문이었다. 먹는 "밤"과 어두운 "밤"중에 어떤 게 더 길까? "어두운 밤이 길다!" 40명 이상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먹는 밤이 길다!" 5명 정도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물론 나머지는 항상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로 있다가 다수에 묻어가는 인간군상들.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어두운 밤이 길다!" 54명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먹는 밤이 길다!" 1명이 손을 들었다. 나다. 그 당시에 나는 전교생중 유일하게 국어시험 만점을 받았었다. 국어선생님은 특별히 나의 존재를 의식해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 혼자 틀린 것이다. 혼자만이 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나는 뿌듯했다. 틀려도 괜찮았다. 그냥 혼자일 수 있음이 좋았다. 손은 주먹이 쥐어졌고, 팔은 귀에 붙었고, 어깨는 바짝 올라가 있었다. 그 손을 절대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수군거리는 아이들의 비아냥거림을 듣기 전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기 전이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다수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다." 그 말과 아이들의 비아냥거림만 아니었어도 나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었을 것이다. 쉬는 시간마저 나는 온전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비아냥거림에 그저 씩씩거리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국어사전을 펼쳐봤다. 나만 맞고 다 틀렸다. 먹는 "밤"이 장모음인 것이다. 분통이 터졌다. 다음 날 나는 국어시간에 선생님에게 말했다. 먹는 "밤"이 길다고. 그러나, 선생님이 말했다. 아니 말씀하셨다. "그래! 먹는 밤이 길다고 했잖아!" 학생들이 또 수군거린다. 그나마 어제의 사실을 기억하는 학생들은 좀 의아스러워했지만 선생님의 말은 아니 말씀은 곧 법이었다. 어제의 일은 선생님의 말 한 마디로 전혀 반대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나만 맞고 다 틀렸던 어제의 상황은 또 다시 나만 틀리고 다 맞았다. 다수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인가? 다수가 우기는 것이 진리인가? 오늘의 나는 모두가 예! 라고 말할 때 혼자 아니오! 를 외치기가 두렵다. 칼 맞기 때문에! 그래도 암흑 속에 작은 등불 하나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글/사진 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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