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溫情) 화재민들에게 빼앗아 먹은 따스한 컵라면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4층 높이의 구호를 외치며 깃발 꽂아놓은 옥상에서 촬영하고 있는 내게 밥은 먹었느냐며 물어봐서가 아니다. 난리통 뒤로 아직 물 한 번 끓여본 적 없으면서 새로 가스스토브를 설치해서는 물 받아서 끓이기 시작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물 끓이고 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밥은 먹었느냐고 물어서가 아니다. 의례 묻는 인삿말이 아니고 진짜로 밥 먹었느냐고 물어보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옆 고물상에서 선물(?) 받았다는 '얼큰한 육개장 사발면'의 첫 개봉이 나여서가 아니다. 그렇게 끓여서는 처음으로 부은 물이 내 컵라면이어서가 아니다. 부랴부랴 정리도 되지 않은 김치통 열어서 새로 꺼낸 총각김치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그 난리통에 김치가위까지 새로 구해 와서는 먹기 좋게 잘라주는 문제가 아니다. 촬영하느라 힘드니깐 앉아서 먹으라며 종이컵에 따로이 담아준 그 총각김치가 문제가 아니다. 커피물까지 준비하고는 식사하고는 커피도 한 잔 하라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컵라면 하나 먹었는데 또 다른 사람들이 와서는 밥은 먹었느냐고 묻는 문제가 아니다. 외지인인 내가 있는 곁에서 걸쭉한 농담을 해대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걸쭉한 농담을 해 놓고는 혹시라도 이해 못할까봐 허허 웃으며 우리가 원래 그런데 이해해줘라는 수줍음이 문제가 아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또 다시 물어보는 컵라면 하나 드시라는 문제가 아니다. '에혀 하나 더 먹을까요?'라는 답변에 어느새 차려진 총각김치 한 접시의 문제가 아니다.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에 얼굴 보고는 일과가 끝나고 어두워질 무렵에 심기가 불편한데 그들이 보고 싶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찾아가자마자 밥은 먹었느냐고 물어보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컵라면 먹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대답하자마자 또 다시 차려지는 어제와 또 다른 총각김치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답답해서 여기로 바람 쐬러 왔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벌써부터 자리 잡은 그들과의 친근함의 문제가 아니다. 아줌마들과 할머니들 의자싸움하면서 엉덩이에 의자 붙힌채로 옮겨 다니는 그 수다터에 같이 앉아 있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걸쭉한 농담에 나까지 곁들여지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내 카메라의 거부감은커녕 슬슬 기대하는 눈빛의 문제가 아니다. 점점 말 걸어오면서 '한국사람 같지 않은 패션'이라고 칭찬하면서 말 걸어주는 할아버지들의 문제가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참새떼처럼 담벼락에 기대앉아서는 '지금 우리가 웃는 거 말고는 할 게 없잖아'라고 말하는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다. 타버린 잿더미 옆에 쳐 놓은 비닐천막 안에서 어젯밤 모기 때문에 자기 뺨싸다구를 세 대나 때렸다는 너스레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이 문제다. 인간 삶에 대한 문제이다. 외지인들의 접근과 시선에 못내 껄끄러워 하면서도 외지인들의 접근에 결코 푸대접하지 않는 그들의 인간내의 문제이다. 울지 않으려니 웃고 있다고 말하는 그들의 또 다른 극복에 대한 문제이다. 너무 크게 웃지 말자고 하면서도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소리가 행복교향곡처럼 들리는 문제이다. 집도 절도 없이 다 타버린 그 숯더미속에서 피어오르는 온정의 문제이다. 나라면 지금쯤 소주를 몇 박스라도 비웠을 텐데 소주 한 잔 마시는 사람 하나 없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문제이다. 타 버린 잿더미처럼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을 텐데 희망적인 사람들에 대한 문제이다. 그렇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문제이다. 마치 "정을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는 종교집단 같다. 어느 한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방법은 "다 같이", "또 필요한 사람"의 해결 방식의 문제이다. 난냉구, 빤스 정도는 살짝 욕심을 부려도 별다른 구호물자에 대한 욕심 없는 오히려 더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그 속에서도 자기 남편, 자기 아내 아니 자기 영감, 자기 할멈 옷가지를 챙겨주는 나 같은 이혼남 눈꼴시게 만들어 주는 문제이다. 그리고 지금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의 문제이다. 참 좋다! 이런 사람냄새 얼마나 고대하며 살았던가? 글/사진 김재중 http://ZZIXA.NET
top of page
bottom of pag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