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그러했다. 꼭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했다. 돌 하나로 두 마리를 잡는 것이 아닌, 맨 몸뚱이 하나로 두 마리를 잡아야 했다. 두 마리를 다 잡아봐야 본전 밖에 되지 못했기에 늘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했다. 때론 사람들이 미련하다 했다. 하나를 버리라 했지만 쉽게 버리지 못했다. 물론 그 방향과 색깔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내 욕심만큼은 늘 두 마리의 토끼여야 했다. 그렇게 30대의 시간을 보냈다. 두 마리를 좇아가며. 이제 40대의 문턱이다. 누군가 그랬단다. 30대에는 어쩌고저쩌고, 40대에는 어쩌고저쩐다. 40대의 어쩌고저쩌고가 무엇인지 명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것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거시기"가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지금의 내게, 오늘의 내게, 그리고 내 두 손을 펼쳐본다. 두 마리 토끼를 좇던 내 손은 움켜쥐었던 주먹의 손톱자국만이 손금 위에 새겨졌다. 내 손에는 아직도 돌멩이가 없다. 돌멩이도 없는 채로 그렇게 두 마리의 토끼를 좇았는지도 모른다. 현대의 금융자본주의라는 부익부 빈익빈 세상 속에서. 의지만이 내 손톱자국처럼 새겨져있다. 내 움켜쥔 주먹 안쪽에 새겨진 내 손톱자국이 내 무기이다. 그렇게 살아온 내 세월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가치관과, 그 과정 속에서 깨달아온 생각의 돌멩이들이 내 무기이다. 박씨를 물고 날아가는 저 제비를 향해 던져 맞춰야 하는 시기가 왔다. 평생 토끼만 좇다가 내 머리 위를 날고 있는 제비는 남의 이야기인 양 또는 내가 감당할 일이 되지 못하는 양 그렇게 날려 보냈다. 어쩌면 두 마리의 토끼를 좇는 나를 미련하다 했던 것이 아니고 내 머리 위의 제비를 날려 보낸 나를 미련하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날아가는 제비가 현실보다는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제비를 향해 돌멩이들을 던지리라 생각하면서 좇던 토끼 한 마리라도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두 마리 토끼를 좇다 못해 이제는 토끼와 제비까지 잡으려 한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도 달린다. 오늘도 나간다. 제비 몰러 나간다. 글/사진 김재중 http://zzix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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