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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와 우리들의 반성

어느 날 끌고 다니던 차를 놔두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내게는 심각하리만큼의 관절염이 있답니다. 벌써 17년이나 지병으로 가지고 있는 관절염이 있답니다. 70넘은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다리는 어떠냐고 물어오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 때로는 여자친구는 서 있고 저는 앉아서 가기도 하는 우스운 남자입니다. 걷는 것보다 서 있는 것이 더 힘이 듭니다. 아무리 찌그러진 똥차이지만 제겐 다리가 되어줍니다. 메모습관이라는 것이 전혀 없던 내가, 학창시절 노트필기라는 것조차 하지 않던 내가, 마흔에 다가서면서 드는 생각들을 하나씩 글로 옮겨 적기 위해서 만년필과 메모지를 챙겨 들기 시작하던 무렵 나는 그렇게 지하철에 몸을 맡겼습니다. 지하철타고 한 시간 남짓 서서 어딘가를 향해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한 시간여를 걸어 걸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의 지하철은 제게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 내 앞에 자리가 생겨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 앉아 갈 팔자는 아니어서 출입문 근처에 서 있다가 출입문 바로 옆에 앉았습니다.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어느 잡상인이거나 취객이겠지요. 또 큰소리로 누군가 소리칩니다. 저 멀리서부터. 그러더니 어느 순간 바로 내 옆에서 내 귀에 대고 소리칩니다. 그런데도 못 알아 듣겠습니다. 지하철 행상은 불법이기도 하지만 때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애써 외면했습니다. "이런..씨.... 나... 다리... 불편한... 사람이야!" 이제서야 알아들었습니다. 고개 돌려 바라보니 아직 몸이 들어오지도 않은 채로 머리만 집어넣고는 그리 소리를 질렀더군요. 그다지 유쾌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멀리서 부터 소리치면서 왔고 또한 보이지도 않는 자신에게 양보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신이 뭐라 하네요. "저도 다리 관절염 있는 사람이예요"라고 작지만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미친놈의 새끼"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네요. 장애인에게 자리를 빼앗기면서 자기도 관절염 있다고 매정하게 말한것이 잘못인가 봅니다.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와 함께 덩달아 같이 일어난 사람까지 한 꺼번에 두 자리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당신 곁에 앉으려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또 소리칩니다. "여기 앉어!" "여기 앉기 싫어?" 사람들을 싣고 있는 지하철은 그렇게 덜커덩 거리며 움직입니다. 당신은 나를 바라보며 계속 뭐라고 합니다. 계속 있으면 안될거 같기에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늘은 횡재인지 또 금방 제게 자리가 났네요.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중에 당신도 나도 앉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계속 사람들을 향해서 뭐라고 합니다. 또 당신 옆의 자리가 비었나 봐요. 젊은 학생보고 옆에 앉으라 강요를 합니다.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내리고 타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마다 눈살을 찌푸립니다. 하지만 아무도 당신에게 뭐라 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누구 하나 서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서야 당신은 조용해졌습니다. 모두가 당신과 똑같이 앉아 있는 입장이 되어지니 당신은 조용합니다. 나는 장애인을 찍는 사진작가입니다. 당신을 어디선가 본 것 같습니다.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인데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장애인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드랬습니다. 그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내 육신의 병보다 내 영혼의 병을 원망했습니다. 오늘은 좀 생각이 달라집니다. 어쩌면 신체의 장애가 가져온 영혼의 장애가 더 큰가 봅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 살인자도, 정신병동에 갇힌 미친 사람도, 그리고 이렇게 주절거리는 나도 모두가 마음의 병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상대를 욕되이 부르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프다고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나도 어쩌면 소리없는 고성을 지르면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시덥잖은 예술이라는 미명아래 그 엄폐물 뒤에 숨어서 나도 어쩌면 나의 아픔을 알아달라고 소리 지르는 것 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사각의 모니터앞에 앉아서 아무 죄 없이 수많은 단추들이 달린 글씨 조각을 만들어내는 키보드를 마냥 두들겨 대면서 그렇게 아프다 아프다 떠들었던 나를 떠올렸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지만 주변에 거룩한 크리스챤들로부터는 음흉스럽고 무서운 사진 좀 찍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외로운거 아니깐 이제 그만 외롭다는 타령 좀 그만하라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바라봐달라고 그렇게 나도 소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달리 제게는 어떠한 특권도 없습니다. 아니 특권 아닌 배려조차 없습니다. 장애는 특권이 아닙니다. 장애는 배려입니다. 장애는 이해입니다. 장애는 사랑입니다. 특권으로 장애를 극복하기 보다는 서로간의 이해로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장애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딴 소리 하지도 말라고 그저 장애만 없으면 좋겠다고! 장애가 없으면 세상만사 해결될까요? 세상 그리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밥 한 끼 사주겠다고 나오라고 했는데 지하철 차비가 없어서 끝내 못 얻어먹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최소한 당신은 누군가 밥 사주겠다고 하면 지하철 차비 없이도 밥 얻어 먹을 수 있습니다. 비약적인 비유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목발 짚은 장애인이고 나는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는 관절염 환자입니다. 당신은 걷기가 힘들 수 있지만 아프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이거 하나 알아주세요. 신체의 장애만이 장애는 아니라고. 가슴팍 쥐어 뜯고 살다가 그 가슴팍 쥐어 뜯던 것들을 겨우 무언가를 통해서 살아갈 이유 만들어 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당신과 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당신이 그렇게 된데는 우리들의 무관심이 더욱 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 지른다고 관심이 가지는 않습니다. 더러워서 피할 뿐입니다. 배려받길 원하나요? 더러워서 피해진 빈 자리를 원하나요? 당신이 지하철 문에 머리만 들이 밀고는 소리지르지 않아도 조금만 더 들어와서 목발 짚은채 서 있기만해도 누구라도 선뜻 일어나 자리를 양보할 만큼의 미덕은 있는 세상입니다. 관절염 심한 나라도 일어납니다. 아무 불평 없이. 장애인 사진을 찍으며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며 나는 세상이 아름다워지길 소망했습니다. 지금의 이 글도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들이 함께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아름다워져 봅시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들이 장애인 대접보다는 사람대접 받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 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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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

뭔가 새로운 느낌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관계를 찾아 떠날까도 생각중입니다. 예술가는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예술가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도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필요로 하는 곳에 필요로 하는 감성을 불태우는 것이 예술가의 몫인것 같습니다. 필요에 의한 사용되어짐이 다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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