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중 / Kim, JaeJung
새벽부터 달려온 낯익은 낯선 도시
그리고 낯익은 낯선 새벽 강가
덜 깬 술과
덜 깬 기억들의 파편
만년필의 잉크 자국에 형체를 물들이는 눈물 같은 빗방울
불 붙이지 않은 갈색 담배만
술 냄새 가득한 입에 물려
만년필 흘러가는 궤적 따라
어지럽게 또는 질서정연하게
내 시선 속에서 흔들린다.
빗방울에 잉크가 번지며
20살의 아득했던 추억들이
수채화처럼 덜 깬 망막 속에서 펼쳐진다.
그 철없던 시절
여기 어디선가
빨간색 맨투맨 티셔츠 속
고양이에게 할퀴었다던
너의 포근했던 젖가슴의 체온이
손끝에서 되살아난다.
추억의 편린처럼
어지럽게 날개 짓하는
하루살이 떼의 파랑 같은 물결
그리고 또 다시
잉크가 번져가는 빗방울
이제 갈색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긴 숨 들이켜 공허한 허파를 채운다.
새벽강가를 맨발로 달리는
저 긴 다리 긴 목 여자 육상선수의 열정만큼
나의 열정에 의구심 가득해진다.
유채꽃밭 건너 강어귀에 내려앉은
저 긴 다리 긴 목 하얀 백로의 외로움만큼
나의 외로움에 의구심 가득해진다.
필터까지 타들어가 버린 담배는
클로바 잎 가득한
아련한 추억 가득한
풀밭에 유기된다.
그리고 나는 비듬가루 털듯
외로움 툭툭 털고 자리를 뜬다.
추억만 짙어졌다.
글/사진 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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